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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룡

Q : 본인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A : 홍병룡입니다. 연세대 IVF 출신으로 3학년 때(1978년) 캠퍼스에서 북테이블을 운영하는 동안 웨슬리 선교사님을 처음 만났고, 이후 기독교 문서사역에 몸담게 되어 IVP 대표간사와 협동조합 아바서원의 대표로 일했고, 기독교 서적을 번역해왔습니다.



Q :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A : 1984년부터 기독교 문사사역에 종사해왔고 작년 여름까지 협동조합 아바서원의 대표로 일하다가 지금은 프리랜서로 책을 기획하고 번역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Q : 웨슬리 선교사님이 어떤 분이신지 소개해주세요.

A : 『문서선교사 웨슬리 웬트워스』에 잘 나와 있듯이 1965년 30세의 나이에 미국 회사와 함께 엔지니어로 한국에 왔다가 남은 인생을 독신으로, 엔지니어와 문서 선교사로서, 그리고 기독교 지성 운동 또는 세계관 운동에 헌신해온 보기 드문 이른 바 자비량선교사입니다.



Q : 웨슬리 선교사님께서 홍병룡님께 어떤 영향을 끼치셨나요? 웨슬리 선교사님께서 추천해주 신 책이나 대화 등이 홍병룡님의 학문 활동 혹은 삶에 미친 영향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A : 1978년 캠퍼스에서 처음 만났을 때 선교사님께 받았던 도전적인 질문들-“왜 공부하는가?” “기독교 신앙과 전공의 관계는 무엇인가?” 등- 덕분에 학문과 삶에 대해 기독교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이후 기독교적 인생관과 세계관을 구체적으로 공부하면서 이에 비추어 삶의 모든 영역을 조망하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대학원 시절에는 학문연구와 관련해서, 그리고 이후에는 웨슬리 선교사님을 고문으로 모시고 IVP에서 일하는 동안에 출판 방향, 책 선정, 영어 책 신간 구입 등 여러 면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님의 지극히 검소한 생활방식, 자기를 위해서는 최소한, 남을 위해서는(주로 구제와 선교, 기독교 교육 등에) 최대한 돈을 쓰는 모습에서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Q : 웨슬리 선교사님께서 한국의 기독교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A : 한국 크리스천들이 기독교적 지성과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에 한국 땅에 오셔서 수많은 기독지성인들(대학생, 대학원생, 교수 등)에게 양질의 기독교 서적을 매개로 삼아 기독교적 사고방식을 개발하도록, 기독교적 학문 연구를 수행하도록,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삶을 영위하도록 격려하고 도전하여 기독교학문연구회,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 오늘의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여러 기독교 교사 단체들, 기독교 대안학교와 홈스쿨링 등의 설립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고,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대부(代父)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Q : 웨슬리 선교사님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A : 지난 55년 동안 한국에서 ‘한 길 가는 순례자’로서 훌륭한 모범과 헌신적인 삶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생애 동안 인생을 잘 마무리하시길 바라고, 선교사님의 뜻을 따라 좋은 후계자들이 계속 배출되어 한국의 캠퍼스와 학문세계, 그리고 사회 곳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더욱 많아지길 소원합니다.



Q : 한국의 후대 기독교인들에게 웨슬리 선교사님에 대해 전달해주고 싶으신 것이 있으신가요?

A : 오늘날 세속주의의 물결에 많이 잠식당한 한국 기독교와 교회의 실정을 볼 때, 웨슬리 선교사님의 헌신과 발자취가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것 같습니다. 선교사님이 늘 강조했듯이, 우리 크리스천들이 다시 신약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인격과 삶과 정신을 발견하고 복음의 본질을 되찾아서 우리 삶과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그에 걸맞는 삶을 영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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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룡: Team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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