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sley Wentworth
1935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노샘프턴에서 태어나 근처 시골 마을인 에머스트에서 농장일, 물놀이, 사향쥐 사냥, 야구를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운동을 좋아하여 고등학교 시절에는 야구, 농구, 풋볼 3개 종목에서 학교 대표 선수로 활약했다. 버지니아 공대 시절 IVF를 통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학, 이후 소그룹 리더, 문서 담당자, 선교담당자로 섬기며 문서 사역과 선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버지니아 공대에서 석사 학위를 마친 후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한국 원조 프로그램에 자원하여 1965년 4월 한국에 왔다. 당시 한국에서 사역하던 간하배, 배사라, 오대원, 하도례 등 여러 선교사들과 교제하며 영어 서적을 한국에 소개하고 보급하는 일을 했다.
1960년대에는 광주기독병원 병동 건축에 전임 엔지니어로 참여했고, 1970년대에는 전주예수병원의 시설관리 책임자로 일하며 예수간호전문학교 교사신축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은퇴할 때까지 상하수처리 과년 엔지니어로 일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과 교수, 교사를 만나며 그들이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학문과 교육을 실펀하도록 도전했다. IVP의 출간 내용에 대하여 자문하였다. 기독교학문연구회를 비롯하여 1980년대에 출발한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 한국창조과학회, KOSTA 운동 등을 배후에서 돕고 자문했다. 2000년대에는 기독교대안교육연맹, 기독교홈스쿨협회 등의 설립을 도왔다.
그의 주소록에는 족히 수백 명이 넘는 기독 학자와 교사의 이름이 있으며, 지금도 그들에게 끊임없이 연락하며 사람을 소개하고 새로 나온 책과 자료를 전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그가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 수없이 많으므로 그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오늘날 한국 기독 지성의 이야기를 결코 쓸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기고자들은 그가 남긴 유산과 열매에 대한 산 증인들이다.
평생 독신으로, 엔지니어로, 평신도 선교사로 살아온 그의 일생은 문서 사역이,
그리고 한 사람을 끝까지 돕는 멘토링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보여 주는 이정표가 되었다.
'문서 선교사 웨슬리 윈트워스'(IVP)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