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적인 진정한 기독교 학교 교육을 위한 제언
<<웨슬리 웬트워스>>
학교란 무엇인가 그리고 교육철학과 목적에 대한 각 학교의 명시적인 개념규정에 기초하여 해당 학교를 기독교학교, 마르크스주의학교, 공립학교 등으로 구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다브니와 윌슨의 다음 설명을 잘 이해할 수 있다.
(2012):
“참된 지식을 구성하는 모든 개별 요소는 하나님께로 수렴할 때 그 완전성을 갖추게 된다. 마치 모든 빛줄기를 따라가면 태양에 이르게 되는 것과 같다. (P.17) 크리스천 교육자의 임무는 학생들로 하여금 태양을 응시하는데 모든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이 제공하는 빛 안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을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다.” 학교의 교육적 임무는 학생들로 하여금 이야기로 표현된 바 이 세계와 그 안에 있는 사람의 본질과 역할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모든 교과목은 이와 같은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어떤 이해를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런 이해는 과학으로부터 도출된 것이 아니고 세계와 그 안에 있는 사람의 본질에 대한 포괄적이고 기본적인 신념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다. 이러한 신념은 공동체의 세계관 또는 세계관들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세계관은 다시 신(神), 또는 다수의 신, 또는 신의 부존재, 또는 그 중간 어디쯤인가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다른 말로 모든 교육은 어떠한 종교적 신념 또는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 중립은 없다. 교육은 묵시적으로 또 명시적으로 이 세계의 본질에 대한 관점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미션스쿨들의 문제는 채플과 성경 수업 시간에는 하나님에 대하여 명시적이지만 나머지 수업에 있어서는 세속 공립학교에서와 마찬가지로 묵시적으로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물음은 “학교에서 하나님과 기독교세계관은 어디에 있는가” 이다. 채플과 성경 수업, 교목을 뺀다면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더라도 (미션스쿨의) 일반 교과 수업 내용에 달라질 것이 있을까? 모든 교육은 근본적으로 종교적이며 교육의 근본에 있는 신념들에는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 ‘물질 세계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는 믿음으로부터 ‘인격적 창조주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다. 대개의 경우 교사들이 스스로 가르치는 내용의 근거가 되는 세계관에 대하여 검토해 보지 않기 때문에 여러가지 신념의 혼재가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는 교회의 성속이원론 때문에 발생하며 창조로부터 시작되는 성경이야기 전체를 교회가 가르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악화된다.
성경이야기는 창조, 타락, 구속, 새창조로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이 가르쳐져야 할 전체 이야기인데 이어지는 모든 일들의 기반이 되는 첫 단계인 ‘창조’는 종종 생략되고 있다.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라는 고백은 전세계적으로 교육계의 지배적인 사상이면서, 삶의 대부분에 대하여 하나님은 관련이 없다는 믿음을 아이들에게 주입하고 있는 서양의 계몽주의적 근대주의에 대한 급진적인 도전이다. 인격적 창조주에 대한 기독교 신앙을 적용하면 학교교육이란 학생과 교사가 교실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붙드시는 말씀/능력에 매순간 의존하고 있는 만물과 그 만물을 조직하는 법칙에 대하여 배우는 것을 말하게 된다. 성경이 구속사역 이전의 예수님을 창조주와 주(Lord)로 일컫는다는 것을 유념하기 바란다. 세계는 그의 것이며 그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골로새서 1장15~17) 성경이야기는 우리에 대한 것이기 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것이며 우리가 그 일부분인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창조된 세계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물질주의적 세계관에 억눌려 이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로마서 1장 18절부터 25절을 주의깊게 살펴보라. 하나님께서 보이는 만물을 통하여 말씀하신다는 것은 교실에서 이루어질 일들에 대하여 많은 것을 시사한다.
교회와 학교에서 문제가 되는 두번째 영역은 이 세계에서 사람의 목적에 대한 가르침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으로서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것이다. 사람은 이 세계의 타락으로부터 벗어나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영원히 우주 공간을 떠다니도록 창조된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플라톤의 기독교일 뿐이다. 살아있고 문화참여적인 진짜 기독교는 예수그리스도의 완전한 다스림 아래 회복된 창조 세계 안에 몸으로 부활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창조 세계를 다스리고 발전시키는 책임을 맡도록 창조되었다.우리는 하나님의 대리자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우리는 왕이신 예수 아래 있는 하나님의 왕들이다. 이 세상에서 사람의 의미와 역할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세계를 문화적으로 돌보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창세기 1, 2장, 시편 8편) 교육은 근본적으로 문화의 변혁에 관한 것이다. 학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 미디어, 그리고 기타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서도 문화 변혁은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의 근거가 되는 것은 창세기의 문화명령 또는 창조명령이다. (창세기 1장26~28) 타락 이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의 중심은 교회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 우리 주 안에 도래한 하나님나라 그리고 그의 재림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 나라를 섬기도록 가르치는 왕을 위한 공동체이다. 학교는 교육의 영역에서 하나님나라 아래 있으며 교회 아래 있지 않다. 학교와 교회는 병존하는 영역으로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나라를 섬기고 유교적 근대주의 사회에서 소비주의, 사회적 지위와 안위 추구 등의 거짓 신들에 대항하여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학교와 교회 모두 직장, 정부, 가족 기타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그리스도의 다스림(하나님나라)을 증거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원리에 기반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나라 복음에 중심을 둔 학교에 있는 모든 교사들이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근거하여 삶의 모든 측면(모든 교과목)을 연구하고 가르치도록 교육받고 또 재교육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교사교육이 창조, 타락, 구속, 그리고 재창조라는 성경이야기를 계속해서 살펴보고 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일에서 출발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진정한 기독교교육을 위해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도 해당하는 기본적인 것이다. 기독교학교는 배움의 공동체인데 배움이란 부모로부터 학생, 교사, 교직원 모두가 모든 측면에서 서로 에게 주는 것이므로 창조, 타락, 구속 그리고 재창조의 성경이야기를 깊이 이해하는 것은 이들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기독교교육의 목적은 전도가 아니라 학생들로 하여금 그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과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통해서 자비하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이해하고 경험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며 그들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서 변혁을 일으키는 반문화 동인(agent)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라는 점이다. 기독교학교가 성령께서 (교사를 통하여) 통합된 방식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모든 지식의 근본이라고 가르치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는 일에 배운 바 지식을 사용하는 청지기가 되도록 가르치는 곳이 되면 믿지 않는 학생들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에 대한 살아있는 개인적 신앙을 갖게 하는 도전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배우는 모든 것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하는 진정한 기독교학교의 도전은 믿지 않는 이들을 향한 전도가 되지 않을 수 없고 이미 믿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인 신앙의 권면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기독교학교가 갖는 도전은 학습되는 모든 것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며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증거가 되고 이미 믿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인 신앙의 권면이 되는 것이다.